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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윤대녕

daisy loves her 2013. 12. 14. 22:15

 

시시하고 단순한 나는 이상하게도 길고 긴 문장을 좋아한다. 꾸미고 꾸미고 꾸며낸 문장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했고 단순하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시시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그때 단순하다 못해 시시하다고 말했었나? 큰 실례다. 헤어나올 수 없는 이야기 속에 짧고 간결한 문장들이 나를 후벼 팔 줄이야. 내가 누군가의 문장을 보고 마음대로 지껄일 입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은 중독 수준으로 너무나도 좋아서 내일 또 그의 책을 빌리러 코가 떨어질 듯한 바람을 뚫고 도서관엘 갈 생각이다. <눈의 여행자>는 책을 읽는 내내 새벽어둠을 자꾸만 훔쳐보게 만들었다. 등골이 자꾸 오싹해지는 바람에. 그의 소설집을 읽으면서는 내가 같이 늙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마루 밑 이야기>까지 다다라서는 그가 차라리 그녀는 아닐까 생각까지 해버렸다. 내일은 또 무슨 책을 빌려야 좋을까. 예전에는 손이 잘 닿는 곳에 그의 소설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마음먹고 찾아보려니 저 아래쪽에 꽂혀 있어서 온 몸을 다해 책을 건져야 했다. 내일도 바닥만 보다가 잘 건져와야겠다.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틈틈이 지나가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당신의 입속에서 스며나오는 치약냄새를 나는 사랑했던 거야. 우리 무지갯빛 피라미들처럼 함께 춤을 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게 얘기해줘. 가끔은 자유와 이상과 고독에 대해서도 우리 얘기해. 화병처럼 나는 주인만을 사랑해. 나도 너의 주인이 되고 싶어. 당신이 먼저 잠든 밤마다 나는 이렇게 한줄씩 쓰고 있어요. - <못구멍>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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