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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자마자

사진 일기

daisy loves her 2013. 7. 7. 20:15

 

 

돌연 장마가 시작됐다 그동안 지내왔던 장마마다 차가운 비를 우산으로 받쳐내면서

억지로 어디론가 갔던 기억이 떠올라서 장마하면 지긋지긋했는데

요즘은 비가 오면 올 수록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 버릇이 생겼다

빗소리에 눈을 떠보면 이른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창문 열기

집에서 비바람 맞는건 그 무엇보다 낭만적이고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내 방보다 어두운 동생 방에 이불 깔고 엎드려 책 읽다보면 출근시간이 임박해오고

젖은 머리로 차가운 버스를 타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

 

 

7월은 시험기간인 학원 스케쥴에 맞춰 덩달아 나도 3시간 동안만큼은 심난해진다

하루 3시간씩 바쁘게 학원에서 보내다 보면 그저 다 큰 애들 수발 드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어떻게 날짜가 흘러가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다

7월 5일 월급날이 왔는데도 지난 달들과 같이 월급에 대한 얘기가 없다

사실 나도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출근하려고 샤워하는 동안 문득 생각난 것이 오늘이 월급날이라는 사실

받지 못한 월급명세서를 생각하면서 퇴근 버스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모기한테 물린 상처만 8방

이상하게 선명한 빨간색으로 보기 흉 할 정도로 상처가 나있다 아빠가 물파스를 발라주면서 혀를 끌끌 찼는데

그 때 조차도 난 월급 생각에 머릿속만 바빴다

 

 

요즘 책 읽느라 바쁘다 지금 읽고 있는 책만 해도 3권

에세이로 위로받고 소설집으로 부드러움을 느끼고 여행기로 꿈을 꾼다

 

 

비가 왔고 아빠 차를 타고 엄마 나 그리고 둘째 동생끼리 화순으로 가는 길이다

음악을 듣는데 이렇게 잘 들리는 날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어쩌다가 집안 분위기가 외할머니댁보다 친할머니댁만 꼬박꼬박 챙겨가는 분위기라 외갓집 친척들과 친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친가쪽 친척들이랑 친한 것도 아니지만)

심지어 외할머니는 내 이름조차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친할머니는 맏아들의 첫째 딸인 나만 보면 아주 좋아 죽으시려고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외할머니한테 정이 잘 안 들었다 그랬던 외할머니가 세월이 지나는 그 순리에 맞춰서 몸이 많이 약해지시더니 생활조차 불편해져서 공기 좋은 산자락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것이다

 

엄마는 외할머니 소식을 듣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동생들 앞에서 울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큰 결심을 한 양 다음날 이른 아침에 외할머니 병문안을 가자고 약속 하더니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엄마는 일어났다

엄마의 저 게으름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진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약속까지 해놓고선 잠을 이기지 못한 게 나를 꼭 닮았다 묘하게 짜증이 나서 다음번에 또 가자고 했을 때는 뾰루퉁하게 이번에 또 잠자느라 못 갈거면서 했지만

결국 오후가 넘어가기 직전 아빠 엄마 나 둘째동생 이렇게 요양병원으로 출발했다

 

외할머니는 내 얼굴조차 잃어버린 것 같더니 이젠 말까지 못하신다 그래도 처음으로 외할머니랑 눈 마주쳤던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외할머니를 비롯해서 총 여섯명의 할머니가 같은 병실을 사용했는데 외갓집 친척들과 있는걸 유독 어색해하는 아빠는  고장났다는 TV를 만지작거리다가 나가버리고 나랑 동생은 답답한 병실 공기와 이상한 오줌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산책하러 간다고 나와버렸다 때마침 할머니 밥먹는 시간이라 엄마랑 할머니 단 둘이 있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핑계같은 생각도 들고

 

우리집 근처도 오일장이 열릴만큼 시골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살아서 요양병원이 두 개나 있지만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 옆에 요양병원을 두면 뭐 어쩌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긴 공기가 맑고 좋았다

 

동생이랑 이슬비 맞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엄마가 울었던 그 날 얘기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울었다는 말만 듣고 외할머니 생각에 울었겠지 그냥 막연한 생각만 했던 나에겐 조금 반전이 있는 이야기

울면서 엄마가 했던 말을 동생이 전해주는데 동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우는 모습 보이지 않던 우리 사이에 둘다 눈시울이 붉어진걸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외갓집 이모들 삼촌들의 연락을 그렇게 받고도, 엄마 보러 병문안 가야지 하는 그 와중에도  항상 외할머니보다 우리 세자매 생각이 먼저 든다고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답답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던 모양이다

 

어쩌면 늦잠 자서 병문안을 못갔던 그 날 그건 엄마의 게으름이 아니라 피곤함이었을 것이다

매일같이 퇴근하자마자 화장도 지우지 않고 TV 소리 들으면서 잠들어버리는 엄마의 길고 긴 잠은 나를 닮은 게으름이 아니라 우리들로 인한 피곤함이었을 것이다

 

 

노래방 가는건 언제나 즐겁다 요즘 노래보다는 90년대 2000년대 노래를 부르는게 더 신나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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