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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너구리가 온다던 그 날
일어나자마자 우중충한 하늘을 보고서는 마침 잘됐다 하고
처음 보는 버스를 잡아 타고 장장 2시간에 걸쳐 화순의 끝자락(같이 보이는)에 도착했다.
혼자서 삐죽거리면서 들어갈 수 있냐고 묻고는 삼천원짜리 표를 꼭 쥐고 들어갔다.
저 문을 지나니 아무 소리도 없는 허공을 걷는 기분이었다.
옆으로 앉은뱅이 모양의 불상이 삐뚤빼뚤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너무나도 조용한 공기탓에 잔뜩 겁먹고 있었다.
웬 장정 몇 명이 앉아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걸음을 재촉했던 길.
축축하고 뜨뜻한 공기에도
몇 백 년을 버텨낸 돌조각들은 끄떡없다.
쪼르르 앉은 모양이 귀엽다.
천불천탑이 운주사를 지켰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 있다는데
다 들 어딜 가고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몇 번의 공부를 거쳤지만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를 불가사의한 유적이라 했다.
와불을 보러 올라가는 길이었나?
걸음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내 평생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크기의 벌이 고꾸라져 죽어있었다.
다들 똑같이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몸통의 줄무늬까지도 너무 생생해서
그 앞에서 한 바탕 울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르고 오르는 동안 땀과 빗물과 바람에 온 몸이 젖었다.
와불 앞에 다다르니 비는 어느새 그치고 햇볕이 날 비추는데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거의 1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와불은 분명 그대로, 그 자세로 누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었을 테지만,
아빠 손잡고 봤던 그 와불 보다 작고 귀여워보였다.
와불이 곧게 세워지는 그 날 천지가 개벽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운주사 와불을 찾을 때마다 아빠는 말해줬다.
그래서인지 와불을 찾을 때마다 두 손바닥을 맞대고 꼭 일어나시라고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맑더니 또 비가 왔다. 역시나 비를 맞고도 얌전히 눈 감고 누워있는 와불 한 쌍.
콧잔등에 쌓여가는 빗물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몇 십 분을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원도 빌었다. 언제부터 나를 괴롭혔는지 모를 만큼 역사가 깊은 고민을 털어뒀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매일을 생각해봐도 답은 없었다. 여기에 두고 갈 수 밖에.
와불과 마주보던 그 하늘.
운주사는 어딜 가나 누가 지켜보는 기분이 드는 요상스런 곳이다.
오랜만에 왔지만 여전한 시선이 느껴졌다.
또 저 밑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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